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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5 | 5 | ||<width=25%><colbgcolor=#5710d4,#d4e1fd><colcolor=white,black> '''약칭''' ||GP||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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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6 | 6 | || '''제정''' ||1981년 1월 27일[br]{{{-2 남라이카 최고인민회의에서 발표}}} ||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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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7 | 7 | || '''현행''' ||2025년 10월 18일[br]{{{-2 남라이카 최고인민회의에서 논의 진행}}} ||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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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8 | | || '''소관''' ||[[남라이카 국방국]], [[남라이카 외교국]], [[남라이카 내무국]], [[남라이카 통합정보국]]||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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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8 | || '''소관''' ||[[남라이카 국가안보위원회]], [[남라이카 국방국]], [[남라이카 외교국]], [[남라이카 내무국]], [[남라이카 통합정보국]]||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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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10 | 10 | [목차]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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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26 | 26 | 그러나 당대 남라이카에게 이것은 [[인치란트 전쟁]] 시절의 악몽을 상기시켰다. 따라서 남라이카 내에서는 정부의 확실한 북라이카 견제 능력 보유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. 이에 1981년 1월 27일, 남라이카 최고인민회의에서 그뤼네발트 플랜이 발표되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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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27 | 27 | ==실행==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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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28 | | 그뤼네발트 플랜은 길게는 년, 짧게는 개월 단위로 바뀌고 그 세부적인 내용이 수정되는 대규모 전략이다. 따라서 본 문서는 이 계획의 연도별 실행과 변천사로 나누어 적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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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28 | 그뤼네발트 플랜은 길게는 년, 짧게는 개월 단위로 바뀌고 그 세부적인 내용이 수정되는 대규모 전략이자 정책, 소규모 전략의 집합체다. 따라서 본 문서는 이 계획의 연도별 실행과 변천사로 나누어 적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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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29 | 29 | ===1980년대===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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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30 | 1981년의 그뤼네발트 플랜은 우선 각종 용어와 개념을 정의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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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32 | 그뤼네발트 플랜은 남라이카에 '기회 요인' 과 '위혐 요인' 두 가지의 대규모 외교적 요소를 제시한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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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33 | '''기회 요인'''은 북라이카의 경제 성장 둔화, 소련과 사비에트의 지원, 사비에트와 맺은 군사 협정, 남라이카의 안정된 정치 및 경제 체제를 들고 있다. 이는 남라이카가 우선적으로 활용해야 할 요인이며, 외교적으로 이점과 기회를 줄 수 있는 부분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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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35 | '''위협 요인'''은 북라이카 국방비와 군사력 증대, 국경에서 벌어지는 양국 간 소규모 무력충돌, 북라이카와 루이나/미합중제국이 맺은 우호 관계, 자본주의 진영의 국력 팽창 등을 지칭한다. 이 요인들은 남라이카가 대처하고 우선적으로 해결할 요인이며, 외교적으로 불리하고 위협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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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37 | 따라서 그뤼네발트 플랜은 기회 요인의 강화와 위협 요인의 견제를 주목적으로 삼았고, 이를 바탕으로 궁극적으로는 북라이카에 대한 견제와 압박을 목표로 삼았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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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30 | 38 | ===1990년대===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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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31 | 39 | ===2000년대===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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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32 | 40 | ===2010년대===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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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33 | 41 | ===2020년대===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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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34 | 42 | ==평가==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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